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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또 다시 불러보는 나의 아들아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09. 5. 21. 17:55

아들아! 또 다시 불러보는 나의 아들아
20년 만에 망월동 묻어 달라던 아들 원 풀어
2009년 05월 15일 (금) 11:59:18 박영자 기자 hpakhan@hnews.co.kr

   
 
  삼산 고갑례 할머니는 불러도 또 불러도 다시 부르고 싶은 큰아들의 영정을 쓸어 내리며 이제야 아들의 원을 풀게 됐다고 눈물 짓는다.  
 
5·18 관련자 문종대씨 30일 망월동 이장
마지막까지 도청 사수하다 계엄군에 체포

무슨 놈의 팔자가 이리도 모진지, 실성한 아들을 보며 숱한 눈물을 흘렸고 어린 손자들을 바라보며 아픈 몸을 이끈 채 매일 남의 일을 하러 다녔던 생활.

제정신이 아닌 아들은 자신이 죽으면 망월동에 묻어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들은 숱한 한을 보듬고, 숱한 한을 나에게 남긴 채 37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5·18 전날인 5월 17일 눈을 감은 것이다. 그땐 난 아들의 원을 풀어주지 못했다.

삼산면 신금리 문종대씨는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지난 1997년 광주민중항쟁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 해인 5월 17일 사망했다. 망월동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고인이 사망한 후 20년이 된 올해 어머니 고갑례씨는 해남 사회단체 도움으로 마을 뒷산에 있던 아들의 묘를 망월동 묘지로 옮기게 됐다. 아들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앞선다는 고할머니. 80년 5월이 아들과 가족을 모두 앗아갔다며 먼저 떠난 아들과 함께했던 질긴 삶을 담담히 들려줬다.  

1모작 모내기로 한창 정신이 없던 5월 광주에 난리가 났다고 야단들이다. 큰 아들이 광주에서 노동일을 하고 있는데 설마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있으랴 애써 걱정을 떨쳐 버리려 했지만 5월이 다 가도록 큰 아이에게 소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들여온 소식, 아들이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했던 사람들 중 한명이 큰 아들이었고 천행인지 아들은 숱한 시신 속에서 살아남아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것이다. 교도소 생활 후 아들은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삼청교육대로 끌러간 것이다.

아들이 교도소와 삼청교육대에 있던 몇 개월 간 난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생활을 했다. 먹지 못하고 잠 못 이루는 나를 보고 남편은 자식 때문에 마누라까지 죽겠다며 집을 떠났다. 신안 앞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간다던 남편은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 후 큰 아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들은 17년간 실성한 채 살았다. 어성천으로 뛰어들고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온 동네를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실성한 아들 때문에 가정은 해체가 됐다. 아이 둘을 남기고 며느리는 집을 나갔고 난 아들과 손자들을 먹이기 위해 매일 품팔이를 하러 다녀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때도 모내기로 온통 정신이 없던 때였다. 5·18기념일 하루 전날 아들은 모진 한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망월동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품팔이해서 살아가는 모진 삶인데다 가까운 친인척도 없던터라 아들의 소원을 풀어주기엔 나의 처지가 너무 각박했다. 동네 몇 사람과 함께 뒷산에 아들을 묻는 것으로 장례를 마쳤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 나이 77세. 매일 병원신세를 지고 사는, 언제 죽을지 모를 생인데 아들의 원을 풀지 못하고 떠날까 더럭 겁이 났다.

5·18해남민중항쟁사료편찬위원회를 찾아가 이장을 논의했다.     
아들은 30일 망월동으로 떠난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아들을 보살펴 줄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편히 눈을 감을 것 같다.

삼산 신금리 문종대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경 도청에서 계엄군에게 검거돼 턱과 머리, 허리 등에 부상을 입고 상무대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인은 같은 해 7월 22일에 소요포고 죄명으로 구속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10월 24일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하기까지 무려 5개월 동안 참기 어려운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는 힘겨운 나날들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5·18해남민중항쟁동지회는 5·18해남민중항쟁사료편찬을 위해 증언과 자료를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010-2685-9171, 016-611-2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