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오늘이다. 해남군 현산면 출신 박광온이라는 사람이 MBC '100분토론'의 새 사회자로 발탁됐다는 뉴스를 읽은 것이. 1999년 10월21일 '무엇이 언론개혁인가'를 주제로 첫 방송을 한 이래 대한민국 TV토론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100분토론은 그 때까지 고작 1~2%였던 TV토론을 5%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지식층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토론프로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다. 2008년 12월 8일 방송된 400회 특집 '대한민국을 말하다'는 심야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7.5%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고, 6시간 7분이라는 최장시간 기록을 세웠던 '2003년 정치개혁대토론-한국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열자'를 비롯해 '광우병파동과 촛불정국', '미네르바 구속파문', '디워-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 '2007대선후보론', '종교인 과세논란' 등 수많은 논쟁들이 시청자를 TV앞으로 바싹 끌어당겨 놓았다.
전임자 권재홍 앵커의 후임으로 선임된 박광온 논설위원(56)은 그러니까 대한민국 대표시사프로그램의 제5대 사회자가 된 셈이다. 어지간히 부담이 되었음직도 하다. "토론프로그램 진행자의 역할은 양쪽의 대화가 엉키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죠" 토론을 잘한다는 것과 토론진행을 잘한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며 자신은 진행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왔다고 말하는 박광온위원을 주말을 맞아 고향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광주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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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쟁점 가운데서 합치된 결론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고 말싸움을 벌이는 일이 더 많지만 그것조차도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산과 바다 같은 토론장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박광온 위원. 대한민국 대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우리지역에서는 박위원이 유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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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100분토론 사회를 맡은지 벌써 1년이 되었네요. 매회 주요이슈들을 찾아 분석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도록 토론을 이끌어가는 것이 쉽지 않으실텐데요. 감회가 어떻습니까?
'아, 벌써 1년이구나'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당시 전임자가 9시뉴스앵커로 가게 되면서 토론 프로에 대한 준비와 기대 없이 갑작스레 맡게 되었어요. 그동안 참 많은 주제들을 다뤘습니다. 사회 각 곳에 얽힌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시청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장을 나름대로 제공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평가는 시청자들이 하는 것이죠.
故 정운영 교수를 비롯해서 유시민, 손석희, 권재홍씨 등 쟁쟁한 선임자들의 뒤를 이어 프로를 맡게 되면서 부담도 컸을 텐데요.
100분 토론은 전에 박경재 변호사와 유재건 의원(변호사 시절) 등이 진행하던 시사토론을 이어받은 것으로 앞서 정운영, 유시민 두 분의 진행자에 이어 손석희씨가 7년 넘게 맡아 틀을 잡아 지금도 매니어 층이 많습니다. 토론이 끝나면 게시판에 활발하게 의견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선임자들의 그늘이 길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요. 부담이라기보다는 그런 분들과 함께 진행을 맡았다는 게 영광스럽습니다.
지난 1년 동안에 수많은 사건과 새로운 사회현상들이 나타났고 이런 현상들이 주제로 다뤄졌죠? 최근만 해도 반값 등록금 문제나 한반도 방사능 오염문제,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단 자살, 또 연예계에 일어나는 오디션 열풍, '재보선 이후 정국'같은 사회문제나 정치문제를 다뤘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토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실 다 기억에 남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지난 3월, 500회 특집으로 다뤘던 '오늘 대한민국, 희망을 말한다'라는 주제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고 시종 열띤 토론으로 이어져 인상 깊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시된 시청자 앙케트 조사를 토대로 불신, 불안, 불통으로 꽉 막힌 우리시대를 진단해보고,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와 그로 인한 개인의 불안을 넘어선 우리 사회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논의했었는데요. 평소 트위터와 블로그 등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문제, 저소득계층 복지 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보여준 배우 김여진씨의 발언이 돋보였습니다. 얼마 전 마침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의 생활고와 지병으로 인한 죽음 소식이 충격을 주었던 때였으니까요.
100분토론 같은 시사토론프로에서는 참가하는 패널들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갑론을박 치열한 설전이 오고갈 때 이를 정리해서 쟁점을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진행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텐데요. 토론진행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박위원님께서 가장 비중을 두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매 프로마다 '토론의 주인공은 사회자가 아니라 패널들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임합니다. 대화가 엉뚱하게 딴 길로 가지만 않는다면 막지 않고 충분히 얘기하도록 하죠. 이럴 때 의견을 달리하는 시청자들은 불만이 많겠지만 진행자의 덕목이랄까 자질은 균형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널리 듣고 겸허하게 말하며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을 한데 녹여서 조화로운 생명체로 통합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지상과제인데 토론은 이 정신을 더 중시하죠.
정보사회에서 정치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언론계 출신들을 많이 영입합니다. 방송계 선배기자나 앵커 중에 정계에 진출한 경우도 참 많았는데 크게 성공한 경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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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
● 1955년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 (분토리)출생 ● 현재 문화방송 보도본부 논설위원(100분토론 진행)
학력
● 1968년 해남 현산남초등학교 졸업 ● 1972년 광주동성중학교 졸업 ● 1975년 광주 상업고등학교 졸업 ● 1983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 졸업 ● 2010년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경력
● 1984년 문화방송 입사 ● 도쿄특파원, 정치전문기자, 정치국제담당 에디터, 보 도국장 ● MBC뉴스데스크 앵커, MBC '뉴스와 경제' 앵커 ● '일요 인터뷰 인', '뉴스와 인터뷰', 100분토론 진행
사회활동
● 흥사단 아카데미 단우 ● 관훈클럽 편집위원 ● 방송기자클럽
주요취재방송
● 1987년 남극 세종기지 건설현장 취재 생방송 ●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현장 취재 방송 ● 1990년 동서독 경제통합, 전독일 통합선거 취재 방송 ● 1992년 대선개표 방송 ● 1994-1997 해외정상회담 수행취재 ● 1998년 오부치 게조 일본총리 인터뷰 ● 1999년 고노 요헤이 일본 외무장관 인터뷰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현지 뉴스 진행 ● 2004년 17대 총선 방송 ● 2007년 17대 대선 특별 방송 진행 | |
하하. 어려운 질문이군요. 국민 누구나 참정권이 있고 평소의 소신과 인생관을 실현한다는 입장에서 정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연장선상에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정계에 진출해 훌륭한 역할을 한분들도 있지만 매끄럽지 못한 선택으로 후배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선배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광주상고를 나와 대학진학을 하고, 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방송계로 진출한 진로선택이 좀 의외였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현산 남초등학교(19회)를 졸업하고 광주에 와서 동성중학교와 광주상고를 다녔습니다. 다른데 시험을 봐서 떨어졌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10월 유신발표가 있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유신체제 등장과 관련된 일련의 조치들이 행해졌지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장기집권을 노리고 정치와 언론은 물론 평범한 시민의 삶까지도 속박하고 통제하는 터무니없는 조치들이었죠. 그 때 담임선생님이 윤영규 선생님이라고 나중에 전교조 전신인 전교협 초대회장도 하시고 5·18때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구속되어 수감 생활도 한 분입니다. 그 분을 통해 알게 모르게 사회문제를 보는 시각을 배우고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을 하면서 도산 안창호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민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대학신문기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 언론계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해남에서 보낸 초등학교시절은, 그리고 그 때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8형제 중 막내인데 다른 형들은 진학을 못했어요. 그래서 고향의 형들에게,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부채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오랜 세월 기자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민원을 해결해줄 수 있는 분들이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주고 싶고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납득이 될 만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위원님의 고향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꿈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송도 요즘은 무거운 주제도 즐겁게, 엔터테인먼트화 하는 경향이 있지요. 만약 지금 고향 해남을 주제로 100분토론을 진행하신다면 어떤 주제로, 누구를 패널로 초대하고 싶습니까?
꽤 재미있겠는데요. 저는 제일 먼저 '해남인구를 늘리는 방법'을 택하고 싶습니다. 한때 25만 명에 육박했던 해남인구가 최근 너무 많이 줄었더라고요. 도시의 비대화와 더불어 농촌공동화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일사천리로 나올 수는 없겠지만 꼭 한번 다뤄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군민 의견조사를 토대로 20~30대 여성들도 패널로 초대하고, 출산여성과 태어날 아이들에게 줄 복지혜택을 감안한다면 군수와 교육장도 초청해야겠네요. 무엇보다도 지역사회가 활력을 얻으려면 환경, 특히 교육환경이 중요하고 지역에서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야 합니다. 해남에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김원자 편집고문·언론인·호남대객원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