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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순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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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신문 지령 1000호에 부쳐
지난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통과시킨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기업이나 노조의 정치자금 기부를 합법화한 법안 내용도 문제지만, 각종 정치경제적 현안에서는 사사건건 대립하던 여야가 입법로비 허용안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합의해 통과시키려 했다는 점이 더욱 불순하다. 국민을 대변해야할 국회가 국민을 속이려고 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유권자인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각 정치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아울러 그가 속한 정당이 제시한 정책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현명한 유권자 역할을 해낼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어디있는가?
그래서 민주국가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감시 역할을 언론에게 위임한다. 대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권력의 압력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언론이 모두 제 기능을 해야겠지만, 특히 지역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인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거도 지역단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언론은 그 범위가 넓을수록 언론본연의 비판감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전국지는 지방일간지에 비해, 지방일간지는 주간지역신문에 비해 정치보도가 부실하다. 감시하고 비판해야할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아무리 신문의 정치면을 많이 늘린다 해도 모든 정치관련 뉴스를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전국 TV방송이나 전국일간지 정치면은 대권후보자나 주요당직자들의 근황만을 반복 소개할 뿐이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치정보는 자신의 지역을 대표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활동에 관한 것이다. 과연 그들이 선거 때 약속한 공약을 지키고 있는지,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유권자로서 다음 선거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자기 지역의 정치인에 관한 뉴스는 해당 지역의 지역언론이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뉴스이다.
해남지역 국회의원과 단체장에 관한 뉴스는 해남신문이 가장 상세하게 보도하기 마련이다.
지역신문은 지역권력의 비판감시자인 동시에 지역여론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특히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인 지방분권의 시행과정에서 지역신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방분권은 지역 간의 첨예한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문화적 토대를 필요로 한다. 각 지역 내에서는 물론이고, 지역과 지역 간, 국가 전체적으로 원활한 정보교환과 의견수렴이 가능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시에 지역주민들의 대승적이고 합리적 양보를 이끌어내는 지역언론이 전국 각 지역마다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지방분권은 가능해진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쟁취한 언론자유 덕분에 한국에서도 지역신문 발행이 가능해졌다.
1989년 창간된 해남신문은 지역사회 민주화 운동을 발판삼아 군민주 형식으로 시작한 풀뿌리 지역신문 원조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풀뿌리 언론답게 모진풍파를 잘 견뎌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언론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늘을 찌를 듯 세도를 부리던 대형일간지들은 이미 오래전 돌이키기 힘든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일간신문의 발행부수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고, 신문사의 적자는 누적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예전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해남신문과 같은 풀뿌리 지역신문은 그야말로 풀뿌리 근성을 보여주면서 꿋꿋하게 세파를 이겨내 왔다. 다양한 종류의 신문 중 지난 20년 동안 성장세를 유지해온 유일한 신문분야가 풀뿌리 지역신문이다.
그들의 생존력은 바로 지역사회에 있다. 그들의 뿌리가 착근될 수 있도록 기름지게 토양을 일궈주는 지역주민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늘 지역주민의 편에서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신문이 된다면, 권력을 남용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두려워하는 신문이 된다면, 해남신문의 지령은 1000호를 넘어 10000호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