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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가볼만한 곳-녹우당 비자나무숲 산책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09. 11. 20. 10:19

가을에 가볼만한 곳-녹우당 비자나무숲 산책
바람결 따라 이파리들 소곤대네
2009년 11월 13일 (금) 16:27:50 박영자 기자 hpakhan@hnews.co.kr

   
 
  녹우당 뒤편 덕음산 중턱에 조성된 비자나무 숲. 낙엽 밟으며 산책로 따라 숲에 이르는 가을정취도 고즈넉하다.  
 
숲길 낙엽 '사각사각' 가을정취 그만

지금 연동리 녹우당에 가면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을향기를 물씬 머금고 행락객을 반긴다. 은행나무를 지나 추억의 돌담길, 그리고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을 덮은 낙엽을 사각사각 밟고 오르는 산책로. 조금은 삭막하다고 할 수 있는 늦가을 정취가 그대로 멋스럽다. 어디로 가는 산책로일까.

'비자나무숲 산책로 400m' 안내 표지판이 답한다.
녹우당. 푸른 비가 내리는 집이라? 고산 윤선도 고택에 붙인 이 당호(堂號)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옛 사람들은 사는 곳이 비록 초가삼간이라 해도 당호를 붙이길 좋아했단다. 녹우당이란 집 이름도 성호 이익(李瀷)의 형 이서(李曙)가 붙였다는데 '바람이 불면 집 뒤 비자나무 숲의 잎들이 흔들려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런 집 이름의 내력을 알고 나면 비자나무 숲이 더욱 궁금해진다. 녹우당도, 녹우당 은행나무도, 고산 윤선도 고택을 찾는 이면 누구나 입구에서 당연히 접하는데 조금은 등산 품을 팔아야 하는 이곳 산책로까지 오르는 발길은 그리 많지 않다.

녹우당 뒤편 해발 200m의 덕음산 중턱에 비자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해남윤씨 어초은공파의 어초은 윤효정 묘 앞에서 오른쪽으로 '비자나무숲 350m'라는 표지판을 따라 가다보면 목책 난간으로 둘러쳐진 산책로와 만난다. 약간 가파른 게 흠이다. 평소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숨을 고르면서 올라야 하는 부담도 있다. 그래서 늦가을에 어울리는 산책로이지 싶다.

주목과의 난대성 상록침엽수인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돼 있다. 9000평 남짓 되는 숲에 수령 300~500년 가량 된 비자나무가 줄잡아 400~500그루 군락을 이룬다. 가장 큰 나무가 높이 20m 내외, 수관(樹冠)의 지름도 1.5m 정도에 이른다니 그 규모가 짐작된다.

그런 비자나무 아래는 울창한 밀림이다. 군데군데 소나무는 물론이고 참식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종과 맥문동 춘란도 여기저기 보인다. 상수리 진달래 철쭉 구절초 개억새도 철따라 자라고 있다.

비자나무 숲 군락. 자생일까.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데…. 이것도 궁금하다. 덕음산의 숲 가꾸기라는 내력이 전해진다. 음습한 것을 덕으로 다스린다는 옛말이 있는데 바로 녹우당 비자나무 숲도 그런 세시풍속이었다고 해야 할까.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그냥 들어보자.

해남윤씨 선조가 뒷산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성들여 숲 가꾸기를 시작, 비자나무 숲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비자나무는 길이 2.5cm 정도로 껍질이 단단한 다갈색 타원형 열매가 9~10월에 익는다. 녹우당 윤씨 종부들이 이 비자 종자를 이용한 비자강정 등 한과를 만들어 전통음식으로 전수하고 있다.

해남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비자나무숲 산책로. 녹우당의 당호 대로 소슬바람 사이로 비자나무 잎들의 속삭이는 소리도 귀기울여볼 만하다. 녹음 우거진 여름에 제격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런 내력을 새기면서 늦가을 비자 열매 수확도 끝낸 비자나무 낙엽을 밟으며 걷는 숲 산책이 나름대로 운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