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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속옷이 이렇게 화려하다니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09. 3. 6. 09:27

할머니 속옷이 이렇게 화려하다니
③ 고 할머니 속옷 가게
2009년 03월 02일 (월) 15:29:49 박영자 기자 hpakhan@hnews.co.kr

   
 
  ▲ 읍장 속옷 가게에는 온갖 색색의 속옷들이 서로 뽐내며 손님을 맞고 있다.  
 
울긋불긋 색에 취한 손님 밀려와

첫 월급타면 반드시 부모에게 선물했던 빨간 내의, 이젠 보온메리와 면내의에게 그 명성을 내 주었지만 그 모든 속옷을 팔았던 해남읍장 속옷 가게는 그 자리 그대로이다.
 이 속옷가게는 빨간 내의 세대인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주 고객이다. 울긋불긋  팬티에서부터 칠부, 육부 속옷까지 이 가게는 온통 색색의 천들로 가득 차 있다.
 화려한 색깔의 천들 속에서 할머니들은 또 고르고 또 고르며 가장 곱다고 생각하는 속옷을 집어 든다. 가격은 거의 1만원대 안팎, 쌈짓돈을 가져온 할머니들은 5000원도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가게에는 우리네 추억을 되살리는 속옷들이 많다. 화려한 색깔의 삼각팬티는 분명 요즘 나온 팬티인데 안에 주머니가 곁들어 있다. 할머니들이 쌈짓돈을 넣고 다닐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것이다.
 한복치마 속에 입었던 속곳도 이젠 화려한 색깔로 변신했다. 그 색깔이 어찌나 곱던지 할머니들도 자신이 사야할 것을 쉬이 고르지 못한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주 고객인 이 속옷 가게의 화려함은 나이가 들수록 울긋불긋 색깔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거기에 들녘에서 활동해야 했던 노인들에게 하얀색 속옷은 먼 나라 이야기였기에 지금도 화려한 색깔이 들어간 속옷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가게에서 속옷 외에 눈에 띄는 것이 또 있다. 몸빼다. 속옷을 사러오는 노인들이 몸빼를 꼭 찾기에 오래전부터 함께 취급해 오고 있다. 월남치마에서 시작한 몸빼, 긴 역사만큼이나 갖가지 형태로 변해왔다는 게 고 할머니의 설명이다.
 해남읍장에서 30년이 넘도록 속옷을 판매하고 있는 고 할머니 가게에 조금만 앉아있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화려하고 추억이 담긴 속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5000원짜리 속곳을 깎아달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과자값도 안 된 것을 깎아달라고 하느냐는 주인집 할머니, 양발을 고르다 고르다 비싸다며 다른 가게를 다 돌고 다시 온 할아버지, 1000천짜리 버선을 신어보고 또 신어본 후 돈을 지불하는 아주머니 등 그 자체가 미소이자 정겨움이다.
 고 할머니는 속옷 장사로 자식들 모두 훌륭하게 교육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젠 그만 쉬라는 자식들의 성화가 이만저만 아니지만 30년 동안 해온 일을 그만 둘 수 있겠느냐며 할머니는 5일장만 서면 속옷가게를 연다.
 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장사를 하면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과의 정감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기쁨이란다.
 봄꽃만큼이나 화려하고 가을 단풍만큼이나 색색의 속옷들이 펼쳐진 해남읍장 속옷가게, 그 속에는 색색의 속옷만큼이나 따뜻한 한국의 어머니, 인동초처럼 질긴 꿋꿋한 조선의 어머니가 함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