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11. 10. 13. 12:29

손동연(시인)
동시· 시· 시조 넘나들며 조화로운 삶 추구
2011년 10월 07일 (금) 17:31:17 해남신문 hnews@hnews.co.kr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으나 이제는 망각해 버린, 동물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 돼 살아가는 자연친화적 세계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소중한 가치라고 말하는 북일면 출신 손동연 시인. 한국 동시단에서 볼 수 없던 4행 연작시 365편을 담은「뻐꾹리 아이들」연작은 그의 문학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기도 하다.  
 

해남이 문인의 고장으로 알려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나 아동문학 쪽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인물들이 많다. 1980년대 농촌의 현실과 문제를 아동문학에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옥천면 팔산리출신 동화작가 윤기현씨, 그리고 얼마 전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타계한 농민운동가 정광훈씨도 있다. '별보는 밤'의 시인 윤삼현씨는 현산면 출신이다.
오늘 금요초대석의 주인공은 북일면 출신 손동연씨(56). 그의 시는 전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시 읽기가 부쩍 장려되는 요즘 지하철역이나 공원 한 켠에 설치된 시화전시대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작가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던 1975년, 당시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손동연씨는 이후 1976년 월간 아동문예에 동시로 또 추천을 받고, 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가작(시),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8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시조)에 연거푸 당선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섯 번이나 문단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그는 시, 시조, 동시의 모든 시문학 장르에 걸쳐 탄탄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는다. 
그가 쓴 동시처럼 '나란히 줄지어 선 옥수수들에게/치과의사 같은 햇볕이 찾아가 들여다보기도 하고/심심하면/아무 곳에나 고추잠자리 떼를/풀어 놓기도 하는' 청명한 가을날 손동연 시인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손동연 선생님을 모시게 된 것은 최근 지하철 역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가을 날'이라는 동시 때문이기도 합니다. 약간 촌스러운 코스모스의 이미지를 그리 아름답게 그려주신 분이 해남분이어서 더 만나고 싶었지요.
하하 그렇습니까? 동시 '가을 날'은 전체 3연 8행의 아주 짧은 시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작품이 실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선생님은  여러 편이 실려 있지요?
시집 「뻐꾹리의 아이들」 중 '나하고 동갑' '이름도 잘 붙인다' '오줌 싸게 오줌 싸게' '얼레빗 참빗' '송아지가 아프면' 등의 시편들이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에, 그리고  동시 '맑은 날', '기린' '구리 구리 구리' '코끼리' 등이 국어책에 실려 있습니다. 저의 시에 나타난 이야기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시 읽는 즐거움과 시의 원리를 학습하는 데 알맞아 본보기로 활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는 시적 장치가 궁금하군요.(빼면?) 작가마다 세계관이랄까, 세상을 보는 독특한 안경이 있게 마련인데 선생님은 시를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과 관심, 즉 따뜻한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요, 서로의 '참 좋은 짝'이거든요. 그래서 울림이 좋은 시는 늘 그 바탕에 '더불어 살기'의 마음이 깔려 있지요.
제 책상 머리맡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어요. '어린이는 어른의 반대말이 아니라 본딧말이다.' 그래요. 동심은 모든 마음의 첫 자리요, 고향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시를 쓸 때 이런 바람을 담습니다. 어린이였을 때를 까맣게 잊고 사는 어른들에게는 제 시가 '젊어지는 샘물'이, 어린 벗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꿈의 샘물'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는.

연 보
● 1955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출생
● 해남북평초등학교 4학년 때 광주 서석초등학교로 전학
● 광주동신중ㆍ고등학교졸업
● 조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 광주대성여고 교사로 근무하다 '전교조 사태'로 해직 후 복직
● 현 광주체육고등학교 국어교사
● 광주여자대학교 창작문학과 외래교수(1998~1999)
●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2000~2011 현재)

작품 활동
● 197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시 '국어시간의 아이들' 당선
● 1978년 '아동문예'에 '해질 무렵' 외 2편 동시 추천
● 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돌' 가작당선
●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우리선생 백결' 당선
● 198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나의 근본' 당선
●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청학동 이야기' 당선


작품집
● 동시집「그림엽서」(1984, 아동문예)
● 「참 좋은 짝」(2004, (주) 푸른 책들)
● 「뻐꾹리의 아이들」(1~6권, 1987~2011 아동문예사)
● 시집「진달래 꽃 속에는 경의선이 놓여있다」(1988, 한겨레)
● 그림책 「곰에게 줄래!」(2004, 교원)
● 영어동시집 「Verse for Children With Hamster」(2001, 글송이)
● 동시선집 「연필이 신날 때」(2003, 은하수미디어)


수상경력
● 제6회 대한민국문학상(1984)
● 제13회 전남아동문학가상(1988)
● 제13회 한국동시문학상(1991)
● 제11회 계몽아동문학상(1992)
● 제30회 세종아동문학상(1997)
● 제37회 소천아동문학상(2007) 등 수상
● 한국문예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4회 수혜(1984, 1999, 2004, 2007년)

'아동문학은 야동(野童)문학으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훈육이나 경계가 아닌, 글로써 같이 놀고 신명을 느끼는 그런 문학. 그래서 저는 3미(三味)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의미. 그런 시를 쓰자는 것이죠. 의미는 진실추구인데 의외로 쉽게 찾아지는 방법이 있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반대말, 혹은 맞섬 말이라고 배우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 중에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한 겹을 이루는 말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남들이 다 보는 앞면보다 남들이 잘 보지 않는 뒷면을 찬찬히 살펴본답니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즐겁게요. 그러면 사물의 숨겨진 본디 의미가 더 잘 보이는 거예요. '하느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해주세요.// 그래야/ 손뼉이 쳐지잖아요./ 잘한다고 맞장구도 쳐주잖아요.'란 시도 그렇게 태어났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한 것이로군요. 언어적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습니다. 이런 재능으로 20살 무렵 동시로 신춘문예에 등단을 하고 연이어 30세가 되기도 전에 시와 시조에까지 등단을 하셨군요. 그럼 동시인 입니까? 시인입니까?
예술에서 장르가 해체되고 다양한 문화가 서로 교차 활용되는 시대에 동시와 시, 그리고 시조라는 형식을 구분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소재에 따라 어떤 그릇에 담는 것이 효과적인가의 문제죠. 저는 동시는 물론 시와 시조를 함께 씁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동시는 시의 아버지'라고 말했던 문단 선배들의 말을 실감하지요. 동시야말로 오롯한 알맹이를 품고 있는 씨앗이라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그 아름다움의 핵이 동심성이라는……. 그런 믿음으로 장욱진화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의 세계를 꿈꿉니다.
 
고향 해남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나 학교 때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북평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고 광주로 전학을 왔지요. 도시학교는 너무나 재미가 없다는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시골에서는 학교를 오가거나 보고 듣는 것이 다 즐거움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노래까지도 공부할 내용과 엮어 외우게 하는 식이었죠.
저의 연작시화집 '뻐꾹리의 아이들'은 뻐꾹리라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제가 그리는 이상향이자 두고 온 고향이기도 합니다. 저의 시의 특질을 오세영은 '삶에 대한 긍정적 믿음과 프리미티즘(원시성)에의 동경을 바탕으로 한 민속적·향토적 세계'라고 하고, 오규원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노래'로 인식하는가 하면, 곽재구는 '자연 속에서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아름다움과 민요나 사투리, 적절한 현대시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시를 빚어내는 솜씨를 높이 산다'고 했습니다. 시의 모태가 결국 고향에 있는 셈이지요.

 
문학을 하게 된 구체적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입니다. 국어 시간에 백일장에 나갈 학생을 뽑는다고 해서 손을 번쩍 들었어요. 글을 잘 써서가 아니고 단지 합법적으로 수업을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동신중학교에서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을 만나 일주일에 한 편씩 20~30매 분량의 글을 써서 선생님 댁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붉은 사인펜으로 죽죽 그으며 그때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네요. "쓰고, 쓰고, 또 써라.  글이 너무 반짝인다. 반짝임부터 죽여라." "머리는 하늘에 묻고 발은 굳게 땅을 디뎌라. 그리고 가슴으로 노래하라." 고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서정주와 박재삼을 만났고 고은을 만났으며 릴케와 타고르도 만났습니다. 닥치는 대로 시집을 구해 읽었고, 베끼기도 하며 그야말로 독학을 했어요.
 
시의 요체는? 지금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데 어떻게 시 쓰기를 가르치나요?
제 손톱에 봉숭아꽃물 보이시나요? 감성은 '철딱서니 없음'에서 나와요. 남 눈치를 왜 봅니까.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로 나가라' 이게 감수성 훈련의 기본이에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걸어 다니는 호기심 천국'인데, 중ㆍ고등학생만 되어도 감수성이 굳어져 있어요. 개성은 '남다름'인데 그 남다름이 없으니 시가 나오지 않죠. 문학하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예컨대 사막에서 비즈니스를 한다고 할 때 남들이 사막의 땡볕만 생각할 때 문학인은 사막의 서늘한 밤을 먼저 생각해야한다는 거죠. '모든 사물을 물음표로 시작해서 느낌표로 나가라' 이게 감수성 훈련의 기본이고 거기다 저는 3다를 또 주장합니다. '다 보라, 다르게 느껴라, 다양하게 표현하라.' 가장 좋은 시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냥 놓아먹이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가을은 추수의 풍요가 있는가하면 나무들도 잎을 떨구는 조락의 계절이지요.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하고 시를 읽게 하는 계절인 것 같아요. 이 가을에 읽을 선생님의 시를 하나 소개해 주시겠어요?
앞에서 언급한 '가을날'이란 동시입니다.

코스모스가 빨간 양산을 편 채
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얘,
심심하지?
들길이
빨간 양산을 받으며
함께 걸어가 주고 있었다

또 이 시는 모 신문의 명작동시 50선에 게재된  '송아지가 아프면'이란 시입니다.

송아지가 아프면 온 식구가 다 힘 없제
외양간 등불도 밤내 잠 못 이루제.
토끼라도 병나면 온 식구가 다 앓제
순덕이 큰 눈도 토끼 눈처럼 빨개지제.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동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데 잠시라도 맑은 샘물 같은 시를 감상할 수 있어서요. 

<김원자 편집고문·언론인·호남대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