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신문/해남을빛낸사람들

정기봉(화원요 대표)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11. 7. 6. 10:59

정기봉(화원요 대표)
해남청자 맥 이어오는 화원요 3代 남강
2011년 07월 01일 (금) 15:11:48 해남신문 hnews@hnews.co.kr

   
 
  우리나라 도자 사에서 독특한 패턴과 뉘앙스를 보여주는 녹청자 재현에 온 힘을 쏟는 화원요 정기봉씨. 그는 "녹청자를 해남청자로 다시 분류하고 해남청자를 활용한 도자상품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남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청자하면 강진이요, 도기하면 이천이나 여주를 떠올리지 해남이 청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해남은 청자의 시원이다. 청자하면 상감청자만 생각하는데 그 이전의 것이 녹청자이며 여기서 발전해 청자가 된 것이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에서 부친의 호를 딴 화원요를 운영하면서 녹청자를 재현하고 있는 남강 정기봉씨(55)가 그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청자의 시원인 녹청자는 해남에서 시작되었다. 녹청자는 이미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엽인 9∼10세기경에 발생되었고 토기에서 자기 문화의 대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민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곳 산이면 가마터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남이야말로 강진이나 부안에 앞선 남도 자기문화의 발상지 아닌가? 왜 그토록 중요한 진실이 알려지지 않고 녹청자가 마치 청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질이 떨어진 청자, 조질청자라고만 알려지게 되었을까? 태풍 '메아리'의 영향으로 종일 장맛비가 오락가락한 지난 일요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차문화전시회에 다기도예작품을 전시하러 온 정기봉씨를 광주에서 만났다.

2011 국제차문화전시회에 출품된 선생님의 녹청자 다기세트와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일반 청자와는 다른 맑고 고운 녹색 빛깔이 두드러진 특색을 보였는데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지난달 23일부터 나흘 동안 광주에서 열린 국제차문화전시회는 세계 각국 명차의 맛과 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세계 8개국 140여 업체가 참여해 차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전시회에는 세계 각국의 유명 차뿐만 아니라 다기, 다구 및 차와 관련된 문화상품들이 함께 출품됐는데요. 저는 작품으로서의 도예뿐 아니라 생활도예를 추구하는 만큼 해마다 전시회에 작품을 냅니다. 녹청자 다기세트는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어서 항상 주목을 받지요.
 
일부 학계에서는 녹청자가 고려 말 청자의 쇠퇴기에 발생했다는 설도 있는데요. 청자의 시원이 녹청자라는 말과는 정반대 아닙니까? 어느 것이 맞는지요.
엄밀히 말하면 둘 다 틀린 말입니다. 청자는 당나라 때 발달한 당 문화인데 녹청자란 단어는 없는 것이지요. 1970년대에 강진에서 일반 청자와는 다른 녹색을 띤 청자가 출토되었는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신 정양모선생께서 명명을 하셨습니다.
그 후 83년 해남 산이면에서 106기, 또 92년도엔 화원면에서 50기의 가마터가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다량의 청자를 해남녹청자라 명명하고 지금까지 불려오고 있는데 이제는 청자에 대한 상대개념이 아닌 해남청자라고 정당한 이름을 부여해줘야 합니다.
 
강진청자, 부안청자처럼 말이지요?
그렇지요. 녹청자로 분류할 당시에는 해남 청자 가마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산이면 진산리 일대에서 청자 가마터가 발견됐고 완도 해저에서 출토된 다량의 청자 제작지가 산이면 청자 가마터로 알려지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은 만큼 해남청자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산이면 일대의 가마터만도 106기가 확인됐는데 이곳은 강진 대구면 청자 가마터의 규모에 결코 못지않아요. 제작시기도 그보다 앞서고요.
 
지금부터라도 해남청자로 고쳐 불러야 되겠군요. 해남청자의 사료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녹청자 도요지는 전 세계적으로도 일본에서만 두 차례 발굴됐고, 이를 근거로 녹청자를 자신들만의 고유 양식이라고 주장했지만 1965년 인천에서, 그리고 해남에서 녹청자 파편과 가마터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학계는 녹청자 발원지와 일본 전파 경로 등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 산이면 일대의 녹청자 가마터에서 발견되는 찻그릇 도편 중에는 청자 발생의 기원과도 밀접한 9세기 중국 오월(吳越)국에서 유행하던 해무리굽 형태를 한 찻그릇 도편이 발견되고 있어 흥미롭지요.
또 해남 가마터는 많은 수의 가마가 동시에 운영된 대단위 가마터로, 초기 청자의 양상과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적으로·고려~조선 시대 서민들이 이 녹청자를 접시, 그릇 등으로 활용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3대째 가업으로 녹청자 재현을 해 오고 계신데 어렸을 적에 본 부친과 조부님의  작품들은 어땠습니까?
지금 쓰는 공방이름 화원요는 아버님의 호를 딴 것입니다. 조부께서는 70여 년 전 장흥 용산에서 옹기제작을 하시다 청자재현을 위해 입지조건이 좋은 해남으로 터를 옮겼다고 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힘들게 걸어온 도공의 길을 자식에게 대물림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친을 공부시켜 학교 교사로 성장시켰는데, 부친은 갑자기 교직을 접고 도예가로 전업해 2대가 됐지요.부친 화원 정형식(95년 작고) 어른은 74년 무균열 청자를 완벽히 재현해 83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특선을 하는 등 여러 차례 큰 상을 받았고, 수상작 일부는 서울 필동에 있는 <한국의 집>에 영구 보존되고 있을 정도로 인정을 받는 대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제  눈엔 너무 고생하시는 것이 못마땅해 "나는 이 일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95년도에 전통 가마를 다 없애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님이 작고하시고 나니까 180도 마음이 바꿔지더라고요. 선친이 하던 것을 마저 정리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뒤늦게 진학해 공부도 다시하고 가마도 짓고 했는데 다행히 아들이 대를 이어 도예작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약력
● 1957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출생
● 선친 청자기능보유자
 -화원 정형식 선생사사(3대째 가업)
● 호남대학교 대학원 산업디자인학과(도예전공) 졸업
● 신지식인 선정(문화예술분야)
 
 
주요수상경력
● 전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 ●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 전남공예품대전 대상     ● 전라남도미술대전 대상
● 목포전국도자기공모전 대상
 
 
전시· 심사
● 1989 제1회 개인전(서울 뉴코아백화점)
● 1991 일본 초대전(오사카NICHE백화점)
● 1992 세계 도자기 축제 참가(일본 아리타)
● 1994 일본순회전(사가, 나가사키, 후쿠오카, 오사카)
● 1998 러시아국립민속박물관 영구보존전시
● 2000 제2회 개인전(서울롯데백화점, 부산롯데백화점)
● 2000 LA전시(LA컨벤션 센터)
● 한·일 전통공예교류전 일본 초청 워크숍(나가사키)
● 전국기능경기대회, 전국공예품대전 심사위원
● 광주·전남도예가협회장 역임
● 호남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강사 역임
 
 
현재
● 한국미술협회, 한국공예학회, 한국전통공예가회 회원
● 해남청자재현추진위원회 기술분과 위원장
● 전남세라믹협회 전통분과 위원장
● 전남공예협동조합 이사장


4대가 한 길을 간다는 쉽지 않은데 아드님까지 대를 이어주니 마음이 뿌듯하시겠군요.  
아버님의 작품은 비록 문양은 덜 세련됐지만 형태나 색깔은 우리가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었죠. 그런데 청자재현에 대한 자료를 남겨두지 않고 돌아가셨기에 녹청차 재현에 참 많은 고생을 했어요. 적어도 아들에게는 이런 시행착오는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모든 작업에 자료를 철저히 남기고 실험하는 과정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아들 병민이가 대학재학시절부터 대한민국공예품대전,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녹청자현대도예공모전, 강진청자공모전 등 전국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아 퍽 다행이지요.
 
이웃 강진군은 청자문화를 지역브랜드로 크게 성공시켜 많은 관광수요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해남청자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기도 합니다. 이건 단순한 루머인지 모르겠는데 초기에 문화재 조사팀이 남도지역 도요지 조사를 하러 강진보다 먼저 해남에 왔다고 해요. 그런데 문화재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가격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지주들의 데모 때문에 해남을 포기하고 강진부터 먼저 시작했다고 합니다.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요?
또 눈앞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문화관련 투자는 단체장인 군수나 정책입안 실무진의 의지와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해남청자의 위상을 바로잡을 전시관이나 사료관의 건립이 당장 필요한데도 쉽지 않네요.
 
해남청자가 해남에서 나는 인기작물인 겨울배추나 고구마를 능가하는 지역문화상품이 될 가능성은?
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사실 해남에는 화려한 문화인프라가 많지요.
대흥사나 땅끝, 우수영, 공룡화석지 등 워낙 좋은 인프라가 있다 보니 청자는 네댓 번째로 묻혀버리고 마는데 3~4년 전부터 자신감을 얻었어요.
전국 문화상품전시회에서 해남 녹청자는 꼭 매니어가 있습니다. 한국 도자사에 독특한 패턴과 뉘앙스를 지닌 녹청자를 알아보는 것이죠. 청자가 귀족적인 색이라면 녹청자는 보다 서민적이고 친근합니다. 식기류나 다기 쪽으로 개발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고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요. 청자빛깔은 음식을 이겨버린다면, 음식을 오히려 살려주는 색이 녹청자입니다.
해남대표브랜드 겨울배추와도 어울리고, 차 문화와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어요.
 
오늘 새삼스럽게 해남청자에 대한 좋은 지식을 얻게 되어 기쁩니다. 선대로부터 이어져오는 녹청자재현과 도예작업들이 해남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도예문화발전에 큰 축이 되길 바랍니다.

 <김원자 편집고문·언론인·호남대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