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신문/해남을빛낸사람들

백영휘 재경해남군향우회장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10. 11. 19. 10:52

백영휘 재경해남군향우회장
도농 직거래 네트워크로 고향발전 기여
2010년 11월 15일 (월) 10:57:48 해남신문 hnews@hnews.co.kr
   
 
 

출향 향우들은 항상 고향 발전을 기원하며, 비록 고향을 자주 못가고 있지만 삶의 뿌리로써 철저한 뿌리의식을 갖고 있다는 백영휘 재경해남향우회장. 30여년 운영해오던 전자제품제조업을 물려주고 향우회 발전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고향에서 시제를 모시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디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선산이 마산면,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 등지에 있어요. 북평면 쪽은 못가고 나머지 세 곳을 들러 시제를 모셨습니다. 해마다 봄가을 시제에 빠지지 않고 다녀가지요. 단일성인 수원 백씨는 시조 백우경(호는 송계)이 중국 소주사람으로 780년(신라 선덕왕1)에 신라에 귀화했다고 합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사당이 있지요. 고려 때 족보가 생길 즈음에 수원에서 국록으로 용토를 받은 중시조로 출발해 저의 고조부가 1800년대에 해남에 내려와 일가를 이뤘지요.

족보를 다 기억하시고 조상에 대한 예의가 극진하신걸 보니 정말 뿌리의식이 투철하시군요. 향우회도 일종의 뿌리 찾기 아닙니까? 지나친 뿌리의식은 배타적 민족주의가 되고, 고향사랑도 지나치면 타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편향된 성격을 만드는데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향우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재경 해남향우회가 만들어진 게 1978년이예요. 초창기부터 회원으로 참여를 했는데 그 때는 서울에서 고향사람들 뭉치는 게 지금보다 훨씬 더 절실했지요. 100명 남짓으로 출발해 계속 불어나 올해 체육대회 모임에 1000여명이 나왔습니다. 한 때 23만 명에 달했던 해남군 인구는 금년에 8만 명에서 더 빠져나갔다는데 비공식통계지만 수도권에 3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향우회의 존재의미는 확실하지요. 우리 부모가 살고계시고 조상들이 묻혀있는 고향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친목에 목적을 둬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재경향우회는 그 목적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습니까?

어떤 모임이나 성장기와 발전기가 있고 또 침체기가 있듯이 항상 발전할 수만은 없는 거지요. 지난해 5월 취임이후 한동안 침체된 모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모임에 강제조항이 없다보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나와 버리고 회비부담이 되는 분들도 있다 보니 생각처럼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재경향우회는 도시 소비자조직으로서 고향의 생산자조직과 긴밀히 연계하면 현실적으로 고향을 돕고 고향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될 텐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군이나 농협을 통해 그런 직거래장터가 꾸준히 마련돼 왔고 해남농산물 브랜드인 '해남미소'에서 나온 상품을 정기총회나 체육대회 때 팔기도 했는데 이런 일들은 사업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차원에서 누군가가 더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약     력

연보

1946  해남군 현산면 상구시리에서 출생
1959  현산 초등학교 졸업
1962  해남중학교
1965  해남고등학교 졸업
1990  세종대경영대학원AMP수료
1997  연세대경영대학원AMP수료
2003  방송통신대학교중문과 졸업
2005  국민대학교경영대학원 MBA석사. 동 대학원 박사과정 휴학 

경력

1985  부천시 원미구원미동에 공장신축
1995  중국천진에 서해전자 설립(단독투자) 대표
2004  제조업 대표 퇴사
2007  현재 임대업(대신, 대명) 운영
국민대경영대학원 동문회회장
2009. 5~  재경해남군향우회운영위의장
현재 재경해남군향우회 회장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에 적응하려면 개인적으로 농촌에도 기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자본은 다 서울에 몰려 있지요. 향우회가 그런 일에 나설 수 있을까요?

농업경제 재생, 농촌사회 재활은 농민들의 뿌리 깊은 숙원이지요. 친환경농산물 기반의 로컬 푸드 생산. 가공. 유통, 생태건축. 생태마을 중심의 농촌지역개발 컨설팅, 도농상생 목적의 도농교류, 직거래 네트워크 등,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유망 사업 분야는 적지 않지만 문제는 사람이지요. 기업경영을 책임질만한 역량 있는 기업가,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고향발전에 앞장 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느냐하는 것이죠.

회장님은 언제 서울로 올라와 무슨 사업을 하셨습니까?

저는1946년에 현산면 상구시리에서 나서 현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남중학교(16회)와 해남고등학교(14회)를 졸업했습니다. 1971년에 제대를 하고 처음에 건강의료기기 판매를 했지요. 7년 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 1977년에 '대신전자'라는 의료용구제조회사를 설립해 운영을 했습니다. 부천에 공장도 짓고 95년에는 중국천진에 서해전자라는 지사도 설립해 확장을 해 왔는데 이제 가업으로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지요.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적절한 때에 향우회회장을 맡고 계시는군요. 향우회가 때로 정계진출을 위한 통로로도 역할을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오해를 하고 실제로도 그런 유혹을 받겠지만 향우회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다 보면 꼭 두 쪽이 나게 됩니다. 언젠가 한번 그런 일이 있었는데 후유증이 너무 커 최근에 서로 자제를 하고 있지요. 고향사람들과 연결이 돼 있다 보니 선거 때면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동안 비교적 중립을 잘 지켜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향우회를 이끌면서 회원들에게 강조해 오신 말씀은?

자기주장을 피력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 배려하는 향우회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후배들의 건설적인 의견을 수렴해 발전된 향우회가 되는데 제가 앞장서겠지만 솔직히 향우 회장은 희생정신 없으면 못하겠더군요. 각종 행사참여는 물론 읍면조직 행사까지 다 참여하려다보면 개인생활이 거의 없어지는데 그런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임기동안 회원들이 믿고 잘 따라와 주시기만 바랍니다.

회장님은 해남신문 창간 때 소액주주로도 참여하셨더군요. 지역 언론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주문해주시지요.

아, 그렇지요. 1990년 그 때 한 계좌가 10만원이었어요. 재경향우회가 주주모집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창섭 해남신문 초대 대표이사님이 상경 창간모금활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출향 향우들은 비록 고향엔 자주 못가고 있지만 신문을 통해 고향소식을 접하는데 비교적 지역의 여론을 공정하게 수렴해 보도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지역신문은 그 지역사회의 개발과 복지증진 그리고 주민들의 관심사를 두루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선 저희 재경향우회와 비슷한 공통점이 있군요. 하하. 우리 모두 삶의 터전으로서 해남에 뿌리를 박고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고 살아갑시다.

고맙습니다. 지역민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재경향우들의 의견도 수렴해 편집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