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신문/해남을빛낸사람들

박 준 <헤어디자이너>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10. 7. 13. 07:32

박 준 <헤어디자이너>
예술과 비지니스 접맥, 150개 가맹점 운영
2010년 06월 28일 (월) 16:22:39 해남신문 hnews@hnews.co.kr
   
 
  모델을 거꾸로 매달고 커트를 하는 업사이드 다운커트, 남성미전용미용실 운영 등 누구보다 앞서는 아이디어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미용 사업을 이끌어가는 해남 마산면출신 박준 회장.  
 

'해남에 가서 족보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예부터 벌쭉한 가문과 그 후예들이 대를 이어 각계각층에서 인물을 배출하는 곳.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이 미용업계에 뛰어 들어 일가를 이룬 마산면 출신 박준 회장(60·박준뷰티랩 대표)을 만났다.
1982년 서울 명동에 박준 미용실을 개업한 이후 30년이 채 못돼 국내외에 150여개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둔 준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월 매출 액만 해도 5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강남구 청담동 본사에서 만난 박준 회장은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고 한사코 손 사레를 치지만 최근 미용업이 서비스업 부문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업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실례지만 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오셨으며, 어떻게 미용업계에 뛰어들 생각을 하셨습니까?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공부를 못 해서지요. 읍내에 있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는데 떨어졌어요. 집에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는데 이것저것 밑바닥에서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스물 두 살 되던 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종로에 있는 YMCA건물에 갔다가 그 곳에 있던 미용실을 본 순간 느낌이 팍 오더라고요. 허드렛일이라도 일을 하게 해달라고 졸랐죠.

남자미용사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대단한 용기였군요. 무엇이 그런 용기를 내게 했을까요?

흔치 않은 게 아니라 없었어요. 나중에 보니 한 사람이 있기는 하더군요. 나는 어려서부터 약간 반항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남의 말도 잘 듣지 않고…. 미용업에 뛰어 든 것도 남자들이 안 하는 일이라서 흥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벌이 뭐 중요하냐는 생각에 진학을 하지 않았지만 미용관련 연수는 무지하게 쫒아 다녔고 부족한 지식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용기가 있다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닌데 회장님은 운도 참 좋은 편이셨군요. 그 시절 얘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당시 YMCA 미용실은 종업원이 30여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컸고 특히 원장이신 김옥진 여사는 미용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죠. 그 분의 겸손함과 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글로벌한 마인드와 미용감각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분 밑에서 4년을 일하며 배웠는데 결국 명동에 진출하고 싶어 배반을 한 셈이죠. 김옥진원장님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스승이자 어머니와 같은 분이죠.

같은 서울인데 종로와 명동의 미용실이 달랐습니까?

아무래도 명동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곳이고, 각 분야의 최고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곳에서 기술을 겨뤄보고 싶었어요. 항상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곳을 찾다 보니 본사를 청담동에 내게 되었고 요즘엔 명동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그 곳에 직영점을 재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헤어디자인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고 그 시대 첨단유행을 반영하는 것인 만큼 어디에서 일하느냐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그것을 몸으로 배웠지요.

당시 거꾸로 매달아 하는 커트로 화제가 되었는데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하하, 나는 반항기질도 있지만 재미있는 것은 따라 하기도 잘해요. 내가 창조해 내었다기보다는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해외토픽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쓰여 있었어요.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커트를 했다고요. 어렵게 알루미늄 틀을 제작해 몸을 고정시키고 머리카락을 아래로 쏠리게 한 다음 직선으로 머리를 자르면 자연스런 커트가 나오지요. 평소에 항상 그걸 할 수는 없고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이벤트로서 시도했는데 매스컴에 뜨면서 대 히트를 쳤지요.

우리가 흔히 미용업이라고 하는 직업에 대한 철학과 집념이 남 다르시군요.

그렇죠. 미용업은 범위가 매우 넓은데 그 중에서도 헤어커트나 퍼머넌트는 예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의상보다도 머리모양이 이미지의 70%를 좌우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저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용어를 맨 처음에 썼고 지금도 헤어디자이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위치나 상황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저의 스승이기도 한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 비달사순을 보면 미용업이 정말 디자인의 한 분야이고 멋진 예술이라는 느낌이 확실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미용업이 고된 노동에 가깝습니다.

가맹점을 150개가 넘게 확장하신 것은 비즈니스로서도 성공하신 것인데 예술과 사업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게 이 업종의 양면성인데요. 거꾸로 매달아 한 커트가 일종의 예술적인 시도였다면 남성전용 미용실을 연 것은 비즈니스 측면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발소가 퇴폐의 온상지로 난리가 날 때 착안을 한 남성전용 미용실은 온 장안의 사모님들로부터 환영을 받았고 조용필, 이영하, 안성기, 이문세씨 등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과 남자들을 다 그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맹점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미용실의 명칭도 처음 썼던 박준 미용실에서 박준미용타운, 박준헤어스토리, 박준 미장을 거쳐 요즘엔 박준뷰티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인식과 이 업종의 발전에 맞춰 이미지를 통합하려는 비즈니스 차원의 노력들이 합해져 미흡하지만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의 남다른 끼와 추진력, 그리고 강인한 정신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지난 해 말인가 청와대에서 대통령과도 면담을 가진 걸로 아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요?

그 동안 적지 않게 여러 곳에서 분에 넘치는 상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소비자웰빙지수 헤어미용부문 4회 1위(2004~2006, 2008)를 했고,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뷰티샵 부문 연속 4회 1위(2005~2008), 지난해에는 국제미용건강대상 수상과 제7회 슈퍼브랜드 미용실 부문 1위를 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뷰티산업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장산업으로 지원, 육성을 주제로 한 회의였는데 그간 안전·위생 차원에서 규제 중심으로 운영해 온 법·제도를 산업육성 중심으로 전환하고 우수기업 발굴, 해외진출 지원 등 정책지원을 강화해 뷰티산업을 전략적 관광·수출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간 미용업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는데 고향 해남을 위해서도 힘을 좀 더 써 주시지요.

고향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찡합니다. 그러나 우리 고향 전남과 해남은 그동안 개발혜택을 보지 못한 것이 오히려 복이 되었다고 자신합니다. 공해를 벗어나 청정지역으로 남은 것이 앞으로 큰 재산이 될 것입니다. 해남 군 홍보대사로써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미용분야의 전문성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되시고자하는 회장님의 꿈이 더 앞당겨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꾸준히 펼쳐 오신 사회 환원 활동들이 아름답게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박준뷰티랩의 이윤을 나누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청담본점에서 월 4회(1회1인) 장애인 헤어 관리서비스, 저소득층 주민들에 대한 미용기술 교육, 구로복지관, 본동사회복지관, 강북 장애인복지관, 양천구 사회복지관 등에서 장애인과 어린이 학교지원, 3군사령부 군 가정 미용기술교육, 21사 병사이발지원을 해왔으며 모교인 마산서초등학교(현재 마산초등학교 용전분교) 도서관 건립 시에는 1000여권의 도서를 보내고 이·미용 봉사활동과 어린이 신문 발간 지원을 해왔다.

김원자<편집고문·언론인 호남대겸임교수>

박 준    1951년 해남군 마산면 용반리 출생

<연보>

1951  해남군 마산면 용반리 출생
    해남 서초등학교 14회 졸업
1980  캘리포니아 비달 사순 아카데미 수료
1981  시카고 Pviot Point 미용학교 수료
1993  경원대 경영대학원 수료
1997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지도자과정 졸업
    런던 비달사순 아카데미 수료
2004  서울대학교 AIP 최고산업전략과정 수료
2008  중앙대학교 한류학과 CEO과정 수료
2009  동국대학교 APP 교육과정 수료

<경력>

1971  미용계 입문
1979  한·일 친선 헤어페스티발 참가
1981  박준미용타운 오픈(원장)/프랑스 헤어 패션 창    작클럽 SMCF 헤어페스티발 참가
1982  한국남성 미용연구회 회장 역임
1985  파리 IDC대회 작품전 초청
1990  모스크바, 북경, 런던, 밴쿠버 등 헤어쇼 개최
1994  동성제약 세븐에이트 TV CF 출연
1995~ ㈜피엔제이 법인 대표이사 취임
1998~ 박준뷰티아카데미 대표이사 취임
1999  결식아동학교 '곰곰이 학당' 교장
2005  경희대 초청 교양학 강의/ 원광대 교수 임명
2006  러시아미용페스티발 '네프스키베라카'심사위원
2007  한중뷰티문화 페스티벌 한국대표 헤어쇼 개최
    서울국제화장품미용박람회 헤어쇼 개최
2008  서울국제화장품미용박람회 헤어쇼 개최
2009  일본 'SPLASH INTERNATIONAL' 헤어    쇼 참가
2010  보건부 산하 뷰티경쟁력 강화위원

<수상>

    국제뷰티서비스 협의회 초대회장
1980  미국 뉴욕 IBS(International Beauty Show)    퍼머넌트 부문 3위 입상
1987  유니세프 감사장
1989  서울특별시장 표창장
2001  미용정보신문사 미용인상 골든 상 수상
2002  재단법인 양호재단 기부 감사패
    연세대 소년소녀 가장 돕기 감사패
2003  에스테티카코리아 'Top Hairstylist상'수상
    소비자 만족 럭셔리 브랜드 대상
2005  SBS 미디어 한중 슈퍼모델선발대회 감사패
2007  코리아'프랜차이즈 대상' 수상
2008  한국잡지기자협회 '올해의 인물상'수상
    소비자웰빙지수 헤어미용부문 4회 1위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뷰티샵부문 연속 4회 1위
2009  국제미용건강대상 수상
    제7회 슈퍼브랜드 미용실 부문 1위
    에스테티카 우수기업 선정패
2010  대한민국 퍼스트 브랜드 대상 수상

<저서>

1995  귀까지 잘라서 죄송합니다
1997  The Art Of Hair
1998  나의 선택, 나의 길
1999  프로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