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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나라 미스터리 혹은 기적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10. 2. 12. 06:18

땅끝나라 미스터리 혹은 기적
2010년 02월 05일 (금) 17:28:59 해남신문 hnews@hnews.co.kr

   
    채복희(편집국장)
독립신문에 뿌리를 둔 우리나라 민간 신문은 시대적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지사적 기자들을 많이 배출해 냈다. 오늘까지도 '민족지'라 자칭하며 행세하는 서울지역 2개 일간지는 태생 당시 일제의 문화정책에 유도돼 창간된 만큼, 사주는 철저히 친일자본가였으며 조선총독부에게 있어 이들 신문은 일제에 저항하는 조선 지식인들의 동태를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마당이자 자료였다.

독립과 혁명을 열망하는 젊은 선지자들이 그나마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은 신문지면을 통한 문서운동이었고 이 때문에 사주의 친일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육사, 변영로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것이다. 일제는 당시 이들 기자들이 쓴 기사를 문제 삼아 걸핏하면 신문을 휴ㆍ폐간시켰고 사주는 지사기자들을 해직시킨 후 다시 복간하는 행태를 반복하며 목숨을 이어갔다.

해방 후 군사독재시절에도 기자 대량 해직의 희생 속에서 신문사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민주화를 외치며 저항하는 기자들을 땅에 묻고 그 피와 살을 거름삼아 살아난 신문사는 뻔뻔하게 그 과실을 모두 차지하며 버젓이 민족지로 행세했다. 그러나 이제는 독자들이 그런 행태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도 한 줄의 신문기사 속에 은밀하게 엮어진 채 숨겨져 있는 신문사주와 광고주의 음모를 쉽게 알아채지 못할 따름이다.

또 다시 희망찬 새해의 날은 밝았건만 오늘 현재 우리의 참담한 언론환경은 탄압의 주체만 바뀌었지 일제와 군부독재 시절만큼이나 암담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신문은 신문자본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세습하는 일가의 거대 왕국으로서 기능한다. 일찍이 스스로를 '밤의 대통령'이라 스스로를 칭한 서울 'ㅈ'신문 사주를 필두로 몇 신문들은 나라를 송두리째 요리하고 있다.

서울이 이러할진대 지역이라고 굳이 다를바 없다. 그동안 우후죽순 격으로 탄생한 광주 전남지역 일간지들은 주로 건설사주들에 의해 사업 방패막이 역할을 하다가 건설자본의 몰락과 함께 나락에 떨어졌다. 자본주들은 손 털고 떠났으나 죽지 못해 남은 신문들은 그 목숨을 언론의 사명, 기능과 맞바꾸었다. 이른바 돈만이 입이 있다는 '머니 토킹'의 시대, 언론은 돈과 먹이를 탐하는 '주둥아리'일 뿐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는 내팽개치고 자본과 권력의 입맛을 맞추고 그것들을 해바라기한다. 

그런데 한반도 남쪽 땅끝나라 해남에 20년 전 태어난 작은 신문이 아직도 살아있는 언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신문은 3만5천세대가 살고 있는 해남고을에서 8천여명의 독자를 갖고 있다. 얼추 서너 집 걸러 신문이 놓여 있으니 해남 사람 눈에는 어디서건 신문이 눈에 띄어 열독률이 100%에 임박한다. 신문을 받기만 하면 구독자로 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읽는가 하는 열독률이다. 현재의 구독률로 보면 해남신문에 난 기사는 대부분의 군민들이 한주간 돌려 볼 수 있는 비율에 다다른다. 그만큼 군민들이 관심을 갖고 매일 편집국에는 기사제보 평가를 비롯한 뜨거운 참여와 애정 또는 질책의 소식이 쉬지 않고 날아든다. 독자가 주인이 되는 진짜 신문이다.

이 신문 주주 650여명의 90% 이상은 5만원을 출자한 소액주주들이다. 이들이 뜻모아 해남신문을 설립한 후 한국 미디어법이 그토록 달성하고자 원하는 '대주주 방지 및 편집권 독립'의 문제를 일거에 이뤄낸 작은 거인이 된 것이다.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이 성과는 전국에서 단 두 곳만이 언론학계에 보고돼 있다. 충청도 땅에 있는 지역 신문 '옥천신문'과 더불어 진짜 신문을 만들어 낸 이 땅 해남은 어떤 곳인가.

해남읍 성내리 군청 앞에 우뚝 선 수성송(守城松)이 마치 그 답을 주는 것 같다. 그토록 고결하면서도 기품있게 모든 것을 그윽히 내려다보며 포용하려는 듯한 그 자태에서 해남인의 정신이 보이고 그 정신이 해남신문에 그대로 깃들어져서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