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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 담배 팔아 지은 '문화예술회관'

희망의 시작 땅끝해남 2009. 1. 23. 14:12

그때 그 시절을 아십니까 - 담배 팔아 지은 '문화예술회관'
향우여 지인이여 내 담배 좀 사주소
2009년 01월 19일 (월) 15:00:37 박영자 기자 hpakhan@hnews.co.kr

   
 
  해남군민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해남문화예술회관은 공무원들의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이 밑거름이 돼 건립됐다.  
 
공무원들 눈물겹게 담배 팔아 70억 조성
수백만원에서 12억까지 판 액수도 제각

군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문화예술회관, 그 문화예술회관을 짓기 위한 해남군 공무원들의 기나긴 발품이 한때 전국을 들썩거리게 했는데.

1995년 7월, 첫 민선군수로 당선된 김창일군수가 치켜든 첫 사업이 내고장 담배 팔아 문화예술회관을 짓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당초 95년 5월에 관선군수로 부임했던 문병일 군수가 장서보유운동 차 시도한 사업이었다.

문 군수가 2개월간 시도한 이 사업은 민선 들어 문화예술회관 건립이라는 목표로 확대되고 이 업무를 담당할 경영행정계가 기획실 내에 만들어진다. 담배를 팔아라는 엄명이 떨어지고 그 돈으로 문화예술회관을 짓자는 목표가 설정되자 공무원들의 피나는 전국 투어가 시작됐다.

당시 해남군은 담배 판매 이익금의 일정액을 인센티브로 주었는데 공무원들은 그 돈까지도 판매업소의 이익금으로 주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전국의 담배소매상인들과 유흥업소들이 해남의 담배를 팔겠다고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해남 공무원들에게 담배를 사들여 다시 식당이나 소매상가에 되넘기는 중간 담배판매업자들도 생겼으니 당시 해남의 담배 판매운동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될 만하다.     

1000원짜리 담배 한 값을 팔면 세수입 460원, 담배가 가장 많이 팔릴 때는 1달에 1억원의 수입이 해남군으로 들어왔다. 순전히 공무원들의 발품으로 1억원의 세수입이 1개월마다 생기니 해남군으로서는 신명날 일일 수밖에.

담배를 가득 실은 1톤 차량이 해남에서 출발해 서울과 안산, 부산으로 떠나는 것은 당시 일상적인 모습이 됐다. 한 트럭분의 담배 값은 무려 5000여만원. 조금이라도 손실이 나면 그 손해액은 고스란히 담당공무원들의 몫으로 떨어졌다.

또한 담배를 판 대신 받은 인센티브도 중간 상인이나 홍보 전략에 쓰여야하는 판이어서 빚지지 않는 것이 남은 장사였다. 

해남군의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으로 가장 고생한 이들은 공무원에 이어 향우들, 특히 담당부서였던 기획실과 자매결연을 했던 부산향우회가 가장 큰 고생이었단다. 부산 향우회원들이 모두 동원되다시피 담배를 팔았고 부산의 각 상가들에게 해남 담배를 매기던 곳도 부산향우회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됐던 해남군의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이 얼마나 거대하고 시끌벅적했던지 한때 서울시도 난리가 났단다. 지방세 중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담배세 수익이 갑자기 떨어지고 서울 전매청에서 나가야 할 담배량도 줄어들자 그 이유를 찾아 나선 것이다.

지역에서 올라오는 담배를 판매할 경우 담배판매 지정업소를 취소하겠다고 소매업소를 압박하는 등 서울시의 하소연은 국무총리실로 보고되고 결국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은 담배 유통질서를 무너트린다는 이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 가장 많은 담배를 판 공무원은 누구일까. 이 업무를 담당했던 신모씨, 신씨가 판 담배만 해도 무려 12억원 어찌, 김모씨도 3억6000여만원, 1억원 이상 판매가를 기록한 공무원들도 꽤 있었단다.

나머지 공무원들은 700만원에서 1000만원 사이, 그러나 장사라고는 안 해본 공무원들이 그만한 양을 팔기 위해 얼마나 심사숙고, 발품을 팔았겠는가. 내고장 담배사기 운동으로 해남군이 조성한 돈은 이자까지 70억원, 문화예술회관을 짓는데 밑거름이 된다.

당초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문화예술회관을 해남읍 구교리 법원 옆에 지으려 했으나 민선 2기 들어 현재의 위치로 장소를 옮긴다. 그리고 2000년 국비와 군비를 더한 180억원으로 공사를 착공, 2002년 준공 후 해남군에서 가장 사랑받은 장소로 태어났다.